영화 <엑시트>는 보기 전에는 ‘재난 코미디’라는 말에 단순한 오락영화일 줄 알았는데, 막상 보고 나면 묘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이에요. 재난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 묵직한 공감과 성장의 메시지를 녹여냈습니다. “웃긴데 왜 울컥하지?” 싶은 장면들이 계속 이어져요. 특히 30대가 된 청춘들의 답답한 현실 — 취업난, 가족과의 거리감, 과거에 대한 후회 — 같은 것들이 용남(조정석)의 모습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됩니다. 만약 요즘 삶이 좀 막막하고 숨통이 필요하다면, <엑시트>는 꽤 괜찮은 해방구가 되어줄 거예요.
줄거리 요약
주인공 용남은 대학 시절 클라이밍 동아리의 전설적인 에이스였지만, 졸업 후 취업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마지못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백수 신세입니다. 스스로 자존감도 많이 낮아져 있죠. 그런 그가 어느 날, 어머니의 칠순 잔치 때문에 가족들과 연회장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대학 시절 짝사랑이었던 후배 ‘의주’(윤아)를 마주치게 됩니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흐르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갑작스럽게 도시 한복판에 퍼지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유독가스’. 건물 아래로부터 가스가 차오르고, 엘리베이터도 전원 차단, 계단은 이미 통제된 상태. 살아남기 위해선 ‘위로’ 올라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용남과 의주는 과거의 클라이밍 실력을 되살려 건물 외벽을 타고 탈출을 시도하게 되고, 무너지는 발판, 좁은 벽 틈, 흔들리는 크레인 등등, 손에 땀을 쥐는 상황이 쉴 틈 없이 이어집니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요?
감상 및 포인트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균형감’이에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정석은 현실 어딘가에 살고 있을 법한 평범한 30대 남성의 지질함과 선함을 찰떡같이 표현해 줍니다. 그가 보여주는 용남이라는 캐릭터는 대단히 특별하진 않지만, 위기의 순간 자신도 몰랐던 힘을 끌어올려 사람들을 구해내죠. 윤아 역시 단순한 ‘여주인공’ 역할에 머물지 않고, 능동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캐릭터로 활약합니다. 예쁜 얼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상황을 파악하고 직접 행동하며 위기를 뚫고 나아가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에요. 그리고 클라이밍이라는 설정도 단순한 액션 요소를 넘어, 과거의 실패와 현재의 도전을 상징하는 장치로 쓰여요. 용남은 늘 현실에서는 뒤처졌지만, 벽을 탈 때만큼은 누구보다 멀리 올라가죠.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눈빛이 달라지고,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단순한 탈출을 넘어 자기 삶에 대한 재도전으로 읽히게 됩니다. 게다가 중간중간 삽입된 개그 포인트들은 진짜 웃겨요. 가족들과의 티키타카, 유도봉 아저씨의 헬멧 개그, 허술한 구조 시스템까지, 현실 공감 개그들이 재난이라는 무거운 배경을 중화시켜 줘요. 보고 있으면 "이건 내 이야기 같아"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요.
총평
<엑시트>는 단순한 재난 영화도 아니고, 단순한 코미디도 아닙니다. ‘막막한 시기에도 탈출구는 있다’는 위트 있는 메시지를 품고 있는 청춘 탈출극이에요. 코미디라는 장르의 가벼움 속에 감동을 절묘하게 섞어 넣은 이 영화는, 현실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꽤 깊은 위로가 될 수 있어요. 특히 요즘처럼 뭐든 어렵고 버거운 시기에, 이 영화는 말해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바닥 같지만, 아직 네가 못해본 게 하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게 바로 당신만의 ‘클라이밍’일지도요. 팝콘이랑 콜라 꼭 챙기세요. 그리고 마음의 무장 해제도요. 눈물 한 방울, 웃음 한 박자, 그리고 뭉클한 감동까지… <엑시트>는 한 번쯤은 꼭 봐야 할 ‘국산 재난 코미디’입니다. 정말 괜찮아요. 아니, 꽤 좋습니다.